홍춘욱 ‘돈의 역사’

[1부 전쟁에서 이기려면 돈이 더 필요해!] [1부 1장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은 어떻게 승리했을까?]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의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에서 군사만 데려온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기술자와 금융인력을 데려왔다. 즉 네덜란드의 사고방식과 금융제도까지 영국에 들여온 것이다. 명예혁명으로 영국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서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이어 영국 해군과 육군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이긴 웰링턴 공작의 사례(1812년 살라망카 전투)는 보급에서 이기는 영국군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금리 하락의 혜택. 영국 국민은 채권에 투자해 노후를 편하게 설계. 신뢰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형성되자 전 세계 부자들이 영국에 투자하러 몰려들었다. [1부 2장]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출범한 이유는? 주식회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사업을 시작할 때 ‘인생을 거는 수준의 결의’가 필요했다. 무한책임 원칙이 사업에 걸림돌. 사업에 실패해도 자신이 투자한 지분만 포기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유한책임 제도.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1648년). 80년 전쟁.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정부는 해외에 진출할 여력이 없고, 민간자본으로 탄생한 회사가 「동인도 회사」.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 소유권이 경영권과 분리되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선출된 이사들이 내렸고 투자자들은 이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거나 주식을 팔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 점령으로 향신료 공급 독점. 엄청나게 많은 돈이 유입. 튤립 파동! 콜럼버스를 후원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16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대박을 발견한 스페인은 왜 네덜란드 독립을 막지 못했을까? [1부 3장 군대는 강하지만 경제는 허약했던 스페인] 신대륙 발견 이후 100년간 이어진 스페인의 행운. 거대한 광산 발견과 혁신적 제련 기법의 발전으로 막대한 은과 금이 해외에서 유입됐지만 이는 오히려 스페인에 저주가 됐다. 스페인의 통화량은 급격히 늘었지만 생산능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물가 상승과 공급 차질로 네덜란드 상품을 대량 수입하면서 스페인의 금과 은은 네덜란드로 흘러들어갔다. 네덜란드병 Dutch Disease. 자원 개발 후 오히려 해당 국가의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 스페인은 미국에서 유입된 금과 은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국이 될 수 있었지만 이를 우리의 적 네덜란드에 보내는 징검다리로 전락하는 바람에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의 왕들(카를로스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이 통화긴축은커녕 대규모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이 장기화되어, 1575년에 스페인 왕실이 파산. 용병부대 월급 미지급, ‘앤트워프 약탈사건’. 1576년 스페인을 추방하기 위해 네덜란드 북부와 남부가 협력하는 ‘헨트 Gent 협약’ 체결. [1부 4장 16세기 물가혁명,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금이 화폐로 부상한 이유 : 작게 나뉜다. 보존성. 사용 가치. 수송 비용의 삭감 등. 금속 통화의 결정적인 문제는 일정하지 않은 공급이다. 금, 은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경제 전반이 침체. 화폐 공급이 부족하면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을 아끼게 되고, 그 결과 물가가 떨어진다. 16세기 물가혁명; 오스만 터키가 동방무역로를 차단, 페스트가 진정되면서 인구 증가, 신대륙에서 유입된 막대한 양의 귀금속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주요 원인. ‘화폐 환상’ money illusion. 임금이나 소득의 실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자신의 임금이나 소득이 늘었다고 받아들이는 현상. 유럽인들이 원하는 동방의 물품, 즉 후추와 비단, 도자기를 구입할 수 있는 ‘교역재’ tradable goods가 대량으로 유입되자 유럽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쳐 ‘글로벌 교역망’이 출현했다. [1부 5장 메디치 가문에서 암스테르담 은행까지] 유럽에 출현한 새로운 자본주의적 거대 상인, 즉 자본가들은 국가와 교회의 간섭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와 미국까지 자유로운 공간에서 활동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주요 사업은 환어음 중개업무. 환어음이란 발행지가 아닌 제2의 장소에서 이를 소지한 자에게 거기에 적힌 액수만큼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일종의 명령서. 다양한 통화를 수급에 따라 환전하고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상인에게 어음을 할인해 주는 믿을 만한 금융기관이 1609년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했다. ‘암스테르담 은행’ 암스터덤 위셀뱅크 맬서스 함정(Malthus Trap)에 갇힌, 즉 1인당 생산성 향상 속도가 연 0.1%에도 끝나지 못한 전근대 사회에 인구 증가는 곧 저주였다. 한정된 토지에 인구가 늘어나면 1인당 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네덜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나폴레옹 전쟁 이전까지 크게 줄지 않았다. 농업생산성 향상, 해외시장 개척, 그리고 선진적인 금융시스템의 정착이 이런 기적 같은 성과를 낳았다. 메디치 가문이 교황과 관련된 권력과 넓은 지점망을 이용해 일세를 풍미했다면 암스테르담 은행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은행업을 한 단계 올렸다. 네덜란드는 금융 혁신으로 경제 패권을 잡았다. [1부 6장 메리 포핀스와 뱅크런의 이야기] 명예혁명으로 국왕이 된 윌리엄 3세는 1694년 잉글랜드 은행 Bank of England의 설립을 허가했다. 잉글랜드 은행은 정부에 대한 대출을 받는 대가로 화폐 발행권을 부여받았다. 1844년 필 조례 Peel’s Bank Act에서 은행권 발행을 독점하여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이 되었다. 영국 정부는 정기적으로 국채를 발행해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하고, 시장금리가 급등하거나 채권 발행이 여의치 않을 때는 영국은행에 자금을 빌리는 방식으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명예혁명 후, 영국 정부의 세수는 급격하게 증가. 나폴레옹 시대에 잠시 어려웠지만 넬슨과 웰링턴이 승리 [1부 전쟁에서 이기려면 돈이 더 필요해!] [1부 1장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은 어떻게 승리했을까?]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의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에서 군사만 데려온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기술자와 금융인력을 데려왔다. 즉 네덜란드의 사고방식과 금융제도까지 영국에 들여온 것이다. 명예혁명으로 영국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서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이어 영국 해군과 육군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이긴 웰링턴 공작의 사례(1812년 살라망카 전투)는 보급에서 이기는 영국군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금리 하락의 혜택. 영국 국민은 채권에 투자해 노후를 편하게 설계. 신뢰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형성되자 전 세계 부자들이 영국에 투자하러 몰려들었다. [1부 2장]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출범한 이유는? 주식회사가 만든

더 이상 정리할 필요를 못 느낀다. 책 내용 중 역사적 사실이 틀린 부분, 어색한 문장, 억지로 이어지는 챕터가 너무 많다. 어차피 읽기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읽긴 하겠지만 정리는 여기서 끝. 시간이 아깝다. 당연히 이 책은 아무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 더 이상 정리할 필요를 못 느낀다. 책 내용 중 역사적 사실이 틀린 부분, 어색한 문장, 억지로 이어지는 챕터가 너무 많다. 어차피 읽기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읽긴 하겠지만 정리는 여기서 끝. 시간이 아깝다. 당연히 이 책은 아무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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